[천자 칼럼] 이순신 리더십

입력 2019-01-23 17:59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서 왜적과 대치하던 밤이었다. 그날 따라 유난히 달이 밝았다. 우리 수군은 적의 기습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마음을 놓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이순신 장군은 새벽에 벌떡 일어났다. 곧 부하들을 소집하고는 해안가로 달려갔다. 달빛에 가린 해안선의 그림자를 따라 야습을 노리던 적은 혼비백산했다.

《징비록》을 쓴 유성룡은 이 일을 기록하며 “이순신의 뛰어난 예측 능력에 부하 장수들이 ‘사람이 아니라 신(神)’이라며 무조건 따랐다”고 평했다. 이순신의 이런 ‘위기예측 리더십’은 23전 23승의 승리 비결이기도 했다. 그는 임진왜란이 터지기 1년 2개월 전부터 방어책을 철저히 세웠다. 그 덕분에 거북선의 함포 발사 시험을 전쟁 하루 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순신의 탁월함은 ‘자강·자립의 리더십’으로 더욱 빛났다. 그는 전란 중의 군량과 무기, 병력을 온전히 자력으로 해결했다. 최고사령관이면서도 직접 밭에 나가 씨를 뿌리고, 소금 굽는 가마솥을 만들며 군수품을 비축했다.

전투에 임할 때는 항상 선봉에서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명량해전 때 13척의 배로 133척과 맞선 순간에는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는 결사구국의 정신을 앞장서 실천했다. 또 하나는 ‘신의의 리더십’을 들 수 있다. 그는 패배의 공포 속에서도 “12척밖에 없다”가 아니라 “아직도 12척이 있다”면서 겁에 질린 부하들을 ‘승전의 믿음’으로 단결시켰다.

불편부당한 ‘원칙의 리더십’까지 갖췄다. 직속상관의 부당한 압력은 단호히 거부하면서도 아랫사람의 노력과 공적은 빠짐없이 챙겼다. 엄격한 신상필벌로 군령을 어긴 자는 단호히 처벌하고, 공을 세운 자는 노비라 할지라도 임금에게 공을 빠짐없이 보고했다.

이렇게 뛰어난 리더십이 없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생활에 적용하는 사람이 많다. ‘충무공 전문가’로 통하는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과 함께 이순신의 호를 딴 서울여해재단을 설립해 이순신 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지용희 전 서강대 교수 등 많은 연구자가 그의 리더십을 탐구하고 있다.

어제는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로 종일 떠들썩했다. 다행히 옮기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모양이다. 오늘따라 이순신 장군이 진중에서 읊은 시 한 구절이 유난히 돋보인다. ‘바다에 맹세함에 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함에 초목이 알아주네. 왜적을 모조리 무찌를 수 있다면, 이 한목숨 죽음을 어찌 사양하리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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